사회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

뉴니커, 올해는 한국전쟁이 73주년 되는 해예요.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 할 것 없이 많은 희생자를 낳는데요. 특히 한국전쟁은 군인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던 전쟁이에요.

  • 한국전쟁(6·25 전쟁):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이 남침하면서 시작된 전쟁이에요. 미국·중국·소련 등 주변국이 참여하면서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전쟁으로 번졌고요. 1953년 휴전 협정 후 우리나라와 북한은 지금까지 분단되어 있어요.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다고?

민간인 희생자는 75만~100만 명 정도로 추정돼요. 민간인 사망 비율이 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보다 높다고. 대표적인 학살사건 살펴보면:

  • 노근리 학살사건: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이에요. 미군이 주민들을 모아놓고 전투기로 폭격하고 총을 쏴 200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어요.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미국 상부의 명령으로 학살이 시작됐다는 증언이 나왔어요.

  •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우리 군·경찰이 1950년 전국 각지에서 국민보도연맹원 약 2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에요. ‘국민보도연맹’은 한국전쟁 전 정부가 공산주의와 관련된 이들을 관리하겠다며 만든 단체인데요. 그와 관련 없는 국민들을 가입시키기도 했어요. 전쟁이 일어나자 정부는 이들을 불러 모아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학살했어요.

왜 그렇게 피해가 컸던 거야?

이념 대립 때문에 학살이 무자비하게 일어났다는 말이 나와요. 한국전쟁 당시 세계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었는데요. 이 둘이 한반도에서 사실상 국제전을 벌인 것. 이념 싸움이 격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사상이 다를 것 같으면 ‘적’으로 여기고 학살한 거예요. 전쟁 내내 두 진영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너무 안타까운 일이야...

더 안타까운 건 아직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 피해 드러낼 수 없었어: 전쟁 후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의 체제인 공산주의에 강하게 반대해 왔어요(=반공). 이 때문에 유족조차 피해 사실을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고.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거든요.

  • 정부 노력 부족했어: 2005년이 돼서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만들어져, 국가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졌어요. 하지만 4년 만에 활동이 종료되면서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2020년에 진화위 2기가 꾸려져 조사를 이어가고 있어요.

이에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시민들이 힘을 모아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오기도 했어요.

평범한 시민들이?

맞아요. 진화위 1기 활동이 끝난 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시민발굴단)’을 만들어 학살 피해자의 유해를 발굴해 왔다고. 지난 21일,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206:사라지지 않는’이 개봉했는데요. 뉴닉이 영화를 연출한 허철녕 감독님, 발굴단원 김나경 님·김소현 님을 만나봤어요.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봐요.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미지: 노근리 학살사건이 일어난 쌍굴다리에 탄환 자국이 남아있어요. ⓒ노근리평화공원
#사회#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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