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여성의 날 인터뷰 2️⃣: '리무브(Re,move)' 민유나 대표

“한 번이라도 편안함을 경험한 여성이라면 결국에는 자기한테 맞는 밸런스를 찾아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민유나 대표님은

여성 속옷 브랜드 ‘리무브’의 CEO예요. 여성의 선택권을 넓혀줄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요.

여성의 다양한 선택권을 위한 제안, 리무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브랜드 ‘리무브’를 4년째 운영하고 있는 대표 민유나입니다.”

리무브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리무브는 ‘Diverse choice for Women’이라는 모토 아래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대신 다른 선택권을 제안하는 브랜드예요. 리무브는 ‘제거하다’라는 뜻인데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제거하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나가자는 뜻을 담고 있어요. ‘re’와 ‘move’ 사이의 쉼표는 여성들이 변화를 직면할 때 겪는 과도기에 동행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고요. 리무브는 여성들이 다양한 속옷 선택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니플패치부터 패드가 내장된 티, 오가닉 언더웨어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과도기’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자세한 의미가 궁금해요.

“여성들이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인지하고 그걸 행동으로 실천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과도기는 정답이 없고, 혼란스럽고 방향성을 잡아나가야 하는 시기잖아요. 그런 시기에 함께 동행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전부터 여성 속옷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컸어요. 창업의 계기가 되었던 건 2016년 여성 연예인들의 노브라 이슈가 언론에서 크게 다뤄질 때였는데요. 그때 ‘이게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한 친구가 무용담처럼 ‘니플패치’라는 걸 사용해봤다고 하는데, 되게 설득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니플패치를 착용해봤는데, 그때 느낀 해방감이 굉장히 컸어요. 속옷만 바꿨을 뿐인데 삶의 선택지 자체가 크게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 편안함을 다른 여성들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 이걸 만들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제가 제조업 전공이 아니다 보니까 머릿속에 있는 개념을 물리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어려웠어요. 실리콘 공장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고요. 그 과정에서 어린 여성 창업가로서 무시받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요청했을 때 저의 열정이나 가능성을 높게 사기보다는 폄하하는 시선을 자주 받았거든요. 처음에는 어디 나가서 니플패치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니플패치를 사업적으로 설득해내야 한다는 점도 어려웠고요. 사업 경쟁대회나 투자처를 다닐 때 다른 회사가 제품의 시장성을 설명한다면, 저희는 니플패치가 뭐고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거든요. 또 최종 결정권을 가진 남성 심사위원들은 니플패치의 필요성을 이해하기도 어려워했고요.”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사업가는 결국 결과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리무브를 키워서 증명하는 길밖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장과 고객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고, 다행히도 정말 많은 여성들이 리무브를 사랑해주셨어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시작하니까 저를 무시했던 거래처 사장님들이나 지인들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여성 고객들이 사업의 필요성을 증명해준 거죠.”

창업 초기에 받은 리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리뷰를 남겨주신 분 중 섭식 장애를 앓는 분이 계셨는데요. 리무브 제품을 쓰면서 본인의 몸의 편안함이나 건강적인 기능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걸 느끼셨다고 해요. 직접 관련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맨 처음에 저희 제품을 등장시키기도 하셨고요. 그런 리뷰를 보면서 이 작은 물건이 이렇게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구나, 속옷 하나로 삶이 급격하게 변하기도 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속옷 하나로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는 말이 정말 공감이 돼요.

“맞아요. 제가 처음 니플패치를 착용했을 때 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됐거든요. (웃음) 그동안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갖고 있었던 한정된 선택지 중에 놓친 건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게 됐고, 생각이나 선택권의 확장을 경험하게 됐어요. 그래서 취업 대신 창업이라는 다른 길도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리무브가 그저 작은 속옷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성들이 이 경험을 통해 인생의 다양한 방의 문들을 열어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제가 최근에 풋살을 시작했는데,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처음에 축구공 앞에 4명의 여성이 섰는데, 서로 계속 공을 차라고 양보하는 거예요. 축구는 공을 뺏고 쟁취해서 이기는 게 룰인 게임인데도 서로 배려하고 있었던 거죠. 여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하면서 쟁취하고 승리하는 경험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요. 또 풋살을 하다 보면 감독님이 계속 “끝까지 해!” 하시거든요. 사실 공이 멀리 떨어지면 거기까지 달려가서 차는 게 귀찮잖아요. 그런데 “끝까지 해!”라는 말을 들으면 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태도를 다른 곳에도 적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확실히 예전보다 운동하는 여성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이것도 페미니즘 리부트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사건이 대표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 페미니즘을 떠올리면 어떤 키워드가 생각나시는지 궁금합니다. 

“속상하게도 슬픈 사건들이 주로 떠오르네요. 저는 2016년 강남역 여성 표적 살인사건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 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저는 항상 ‘기 센 여자’ ‘유별난 여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거든요. 항상 목에 가시가 걸린듯 답답했고요. 그런데 페미니즘을 접하고 가시가 내려가듯, 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훨씬 더 커졌어요. 말 그대로 숨통이 트인 것 같았고요.” 

그렇다면 요즘은 어떠신가요? 최근 몇년 새 변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껴요. 몇 년 전만 해도 친구들끼리 모이면 대화 10번 중 8번은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요즘은 빈도가 많이 낮아졌어요. 

그런데 그게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페미니즘은 꺼지지 않는 불씨 같은 거라서, 한 번 접한 이상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상황을 반복해서 마주하다보니까 지친 게 아닐까 싶어요.”

리무브는 여성이 불필요한 꾸밈이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브랜드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지향을 지닌 ‘탈코르셋’ 등에 대한 얘기가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개인적으로 변화를 많이 느껴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환경적인 요소도 크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때 편안한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2~3년 동안 이어지다가, 코로나가 끝나고 외출을 한다거나 해외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잖아요. 그래서 패션이나 코스메틱에 대한 보복 소비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한 번이라도 편안함을 경험한 여성이라면 결국에는 자기한테 맞는 밸런스를 찾아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가치관과 현실적인 상황 사이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셨을 것 같아요.”

자신만의 밸런스를 찾아나갈 거라는 말씀이 너무 좋네요.

“각자 자기만의 선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잖아요. 이전처럼 강경하게 살기는 어려워도,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자기만의 중심을 새롭게 잡아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학생 때 하루도 안 빼놓고 화장을 하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저도 코르셋을 하나둘 씩 내려놓는 경험을 해보고 나니, 제 컨디션이나 그날의 TPO에 맞춰서 제 필요에 따라 꾸밈을 조절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가 통제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렇게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게 이 가치관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요즘 무기력함이나 허무함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대표님도 혹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제가 애정했던 몇몇 언론사나 미디어가 없어질 때 많이 느껴요. 최근에 ‘듣똑라(듣다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도 없어졌고, 그 전에는 ‘닷페이스’도 없어졌고요. 뭔가를 바꾸어나갈 때 개인들이 애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기업이나 미디어, 정책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가 앞에서 이끌어줘야 개인도 같이 소속감을 느끼면서 함께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미디어들이 사라졌을 때 ‘댓글 하나라도 더 남길 걸’ 하고 아쉬웠어요. 그런 부분에서 무력감을 많이 느끼기도 했고요.”

무기력함을 느끼는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포기는 배추 썰 때나 하는 말이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웃음)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이 정의하는 페미니즘과 성공은 다 다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게 더 힘이 될 때도 있으니까요. 또 힘들고 무기력함을 느끼더라도, ‘우리 포기하지 않고 같이 가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리무브도, 뉴닉도 그렇게 함께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뉴닉이 이번 여성의 날을 맞아 준비한 슬로건이 ‘RE-BUILD-UP’이잖아요. 우리 주위의 여성들이 ‘다시 쌓아가야 하는 것’, 혹은 포기하지 않고 지켜야 하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유머요. 유머를 꼭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유머는 힘든 상황도 다시 활기차게,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힘이 있잖아요. 그 힘을 통해 지금처럼 기세가 꺾인 시기, 혹은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시기를 대담하게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힘들 때면 제가 좋아하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계속 돌려보거든요. 작품 속 여성 캐릭터에 저를 많이 투영하는데, 인터뷰 준비하면서 보니 신기하게도 다 여성 캐릭터의 이름이 제목인 영화들이더라고요. 영화 ‘바비’의 바비, ‘아멜리에’의 아멜리에, ‘언브레이커블 키미슈미트’의 키미,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프랭키, 그리고 ‘작은아씨들’의 조요.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자기들의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든 대담하고 유머스럽게 풀어간다는 거예요. 이 여성들처럼,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도 힘든 상황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자신만의 대담한 스토리로 풀어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계속 ‘리빌드업’하실 수 있도록, 저희도 동행할게요.”

#사회#인권#여성#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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