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여성의 날 인터뷰 3️⃣: 젠더 사건 전문 변호사 이은의

“1 더하기 1이 계속 1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2가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은의 변호사님은

‘이은의 변호사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변호사예요. 박진성 시인 성폭력 사건과 박유천 성폭력 사건, 최근 황의조 불법촬영 사건 등을 담당하며 젠더 사건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젠더 사건 전문 변호사로서의 경험과 생각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은의 변호사라고 합니다. ‘74년생 이은의’는 시대의 전형적인 경로를 밟아온 사람이에요. 제가 93학번인데요. 대학교 4학년 때 IMF가 터졌어요. 저희 때부터 처음으로 ‘취업난’이라는 얘기가 나왔죠. 제가 취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기업들이 ‘우리는 여성을 10%나 뽑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자기들이 ‘괜찮은 기업’이라는 걸 보여주는 자랑 같은 거였어요. 동기들을 봐도 ‘스펙’에 비해 취업이 너무 안 되는 거예요. 저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그러다가 남초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다 성희롱을 당했고, 4년 정도 소송을 하면서 회사와 싸웠습니다. 2007년쯤에 언론에 첫 기사가 나갔는데요. 제가 재판에서 이기기 시작하니까 지상파 방송에도 보도되고 그랬죠. 그때 제 얼굴과 이름을 다 드러냈어요.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었고, 노조도 없는 회사에서 저 혼자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랬던 거죠.

그러다 회사를 나와서 로스쿨에 갔고, 마흔이 넘어서 변호사가 됐어요. 여성이니까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아무도 저를 안 뽑을 것 같았어요. ‘저 좀 뽑아주세요’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 사무실을 열어볼까 했다가 여기까지 왔죠.”

젠더 사건 전문 변호사가 되신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젠더 사건 변호사가 된 굉장한 계기나 과정이 있을 거라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꼭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제가 겪었던 성폭력 사건을 로스쿨에 갈 때 책으로 썼어요. 사무실을 개업할 때쯤에 그걸 기억하고 기사를 써준 기자분들이 있었고요. 그러다가 저랑 동갑인 한 출판사 편집자가 저를 찾아오셨고, ‘예민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쓰게 됐죠. 

제가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1년이 지났을 때쯤 책이 나왔는데요. 제 사건을 기억해주신 여성들이나 단체 활동가분들, 전 직장 동료들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책도 나와서 조금 더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점점 저를 찾는 분들이 늘었고요. 저같은 이력을 가진 변호사가 없었던 거예요. 제가 맡은 사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피해자(의뢰인)가 자기와 비슷한 피해자에게 저를 추천해주시는 식으로 선순환 구조가 이어졌고요. 그래서 제가 11년이나 변호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피해자분들을 찾아내고 그랬던 게 아니에요. 절박한 피해자들이 저를 찾아주셨던 거죠. 그분들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고요.”

우리나라 ‘미투 운동’에서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인 박진성 시인 사건을 맡으셨잖아요. 재판이 시작된 지 5년이 넘게 지난 최근에야 최종 판결이 나왔는데요.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해요.

“무슨 대단한 생각을 할 것 같잖아요. 근데 생각을 잘 안 해요.”

재판 과정이 너무 길었기 때문일까요?

“제가 맡은 사건이 그 사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도 많아요.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더 귀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무슨 사건이든 잘 끝나면 기뻐요. 근데 그냥 그게 일상이에요. 다른 사건 재판을 가야 하고, 또 어떤 사건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기도 해요. 

그런 상황이다 보니 박진성 시인 사건이 끝났을 때도 특별한 소회는 없었어요. 물론 상징성이 있거나, 피해자가 입은 피해나 그런 것들이 맞물려서 조금 더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되는 사건은 늘 있죠. 이 사건도 별의별 일이 다 있었어요. 특정 사건들이 끝나도 사무실에서 벌이는 전투가 많으니, 무언가 끝났다는 생각은 잘 안드는 것 같아요.”

더 큰 문제들이 남아있다는 의미일까요?

“이 사건을 맡으면서 가해자나 판사, 나아가서는 성범죄가 벌어지는 사회적 구조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진 부분이 있다면, 저는 그걸 다음 사건에 적용하는 거예요. 가해자들이 거짓말을 할 때 정교한 논리를 내세우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왜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사회도 전부 거기에 휘둘릴까 하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근데 (사건을 맡으면서) 겪어보니까 그냥 우리 사회가 너무 오랫동안 성인지 감수성이나 이런 부분들에서 뒤떨어져 있었던 거죠. 

법원도 마찬가지예요. 변호사가 굉장히 앞서가는 얘기를 해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어요. 다만 ‘딱 이만큼, 한 발자국 정도만 앞으로 가자’는 생각으로 얘기하는 거고, 그게 설득이 되면 그만큼은 앞으로 가는 거죠.”

젠더 관련 사건을 쭉 맡으시면서 예전과 비교해 최근에 좀 달라진 게 있다고 느끼신 부분이 있나요?

“제가 2014년에 변호사가 됐는데, 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얘기하면 한 2016~2017년까지는 정말 별로였어요. 예를 들어 준강간 사건에서 피고인들의 고정 레파토리 같은 변명이 있었어요. ‘상대 여성(피해자)이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대화를 했다’는 건데, 지금은 그런 변명이 이전처럼 쉽게 통용되지 않거든요. 한쪽만 기억하는 거니까. 

반면에 지금은 CCTV를 확인하거나 마신 술의 양이나 피해자가 사건 직전에 남긴 카카오톡 메시지 같은 걸 보다 자세히 보고, 피해자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좀 더 피해자의 입장에서 면밀하게 살펴봐요. 5~6년 전만 해도 만취상태에 대한 해석을 매우 좁게 적용해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워 잘 인정되지 않았던 피해가, 적어도 전보다는 치열하게 다퉈지고 좀 더 인정되는 거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금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굉장히 위험한 시기라고도 생각하고요.”

‘위험한 시기’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전에는 파이팅이 있었거든요. 워낙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많았으니까, 여기저기 가서 문도 두드리고, 문을 부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막 떠들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미투 운동이 시작됐어요. 난리 북새통을 겪다가, 2021년 봄이 되면서 그해에 여러 가지 이유로 미투 운동이 절벽으로 떨어져요. 기운이 확 떨어진 거죠. 2022~2023년이 되니까 (미투 이전의) 세상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기점을 건너왔는데, 조금이나마 진보를 맛봤는데 다시 뒤로 밀려난 느낌이 드는 거죠.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는데, 다시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까. 제가 60세까지 일한다 치고 그러면 그때까지는 그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번아웃이 왔어요. 사실 변화라는 게 이만큼 전진했다가 조금 후퇴했다가 하면서 이뤄지는 것인데도요.”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변화란 진전과 후퇴를 반복한다는 지점도요.

“어떤 면에서는 지금이 교활하고 난감한 시대라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에는 기자들이 노골적으로 피해자나 가해자 한쪽 편에 서서 기사를 썼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면 욕먹는 걸 아니까, 적어도 그렇게는 안 쓴단 말이죠. 대신 ‘암묵적 동의 하에 찍은 불법촬영물은 재판에서 유죄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식으로 기사를 써요. 근데 이런 게 교활하고 난감한 기사의 대표적인 사례예요.

왜냐하면 법리적으로 ‘암묵적 동의’라는 게 존재하지 않거든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표면적으로 구해지지 않았을 때, 동의로 볼 만한 상황이었냐 아니었냐를 따져서 ‘명시적인 동의가 없었지만 동의로 추단할 만한 상황이 있어서 동의로 본다’는 예외적인 판결이 있을 뿐인 거죠. 그렇다고 해서 동의를 구한 걸로 판단한 게 아니고,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라고 표현하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건데, 그걸 호도하는 쪽으로 기사를 쓰는 거죠.

미투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굉장히 진보한 건 사실이지만, 사회 전체적인 의식은 아직 그대로인 것도 많고요. 특히 법리가 많이 바뀌었냐고 하면 그렇지 못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어둡고 막막한 가운데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기

개인으로서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최근에 새로 하게 된 생각 같은 게 있으신가요?

“내가 모든 걸 바꿀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아요. 제가 성격이 좀 급한 편인데요. 전쟁에 비유하자면, 최전방에서 혈투를 벌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아직은 제 몸이 멀쩡히 남아 있지만 적은 끝없이 밀려오고,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도무지 모르겠는 상황이잖아요. 한꺼번에 다 쏟아낸다고 해서 거기서 싸움이 끝나는 게 아니라, 긴 호흡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런 이유에서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고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돼요. 업무의 속도 얘기가 아니라, 모든 걸 이번에 다 이루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같은 거예요. 싸움을 하나씩 이기면서 유의미한 스텝을 밟아나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싸우다가 넘어질 수도 있는데,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넘어져야 하는 거죠. 내내 안 넘어지다가 아예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넘어지면 안 되잖아요. 하나의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되 지치지 않는 것, 내년에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무리하지 않는 것.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주위 친구분들이나 다른 동료분들은 어떻게 지내시는 것 같으세요?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잘 지내시는 것 같나요?

“친구들이랑 만나면 이런 얘기를 잘 안 해요. 지금까지 살아남은 친구들하고는 그냥 놀아요. (웃음) 진지한 건 사무실에서 엄청 많이 하잖아요. 진지한 힘은 응축해서 필요할 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까 속도 얘기도 했는데, 그런 식으로 무리하지 않고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는 거죠. 

집에서는 일도 전혀 안 해요. 5년 차까지는 집에서도 일을 했는데, 지금은 의도적으로 공간을 놀이와 일과 쉼의 영역을 좀 명확하게 구분하는 편이에요. 일할 게 있으면 피곤해서 기어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꼭 사무실에 나와서 하죠.”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관통했던 20~30대 여성들 중에는 어떤 무기력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변호사님도 비슷한 느낌을 받으시는지 궁금해요.

“깨어 있는 여성일수록 고립감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면 같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너는 너무 급진적이야’ 같은 말을 듣기도 하잖아요. 남자들한테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저도 로스쿨 다닐 때 밑도 끝도 없이 ‘(너는)강성이잖아’라든가, '튀어서 좋을 게 없다' 같은 식의 말을 많이 들었어요. 뭘 한 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궁금했죠. 그래서 왜 강성이라고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막상 답을 제대로 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게 여성을 위축시키는 말이잖아요. 당사자나 그 말을 옆에서 듣는 다른 여학생들이나. 

그런 고립감은 지금도 느껴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고립돼 있지 않아요. 잘 생각해 보면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잘 안 보이는 거예요. 이때 작은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연대가 필요할까요?

“주변에 누가 있나,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은 없나, 이런 걸 생각하면 한없이 외롭고 막막하잖아요. 근데 그때 나는 누구의 손을 잡아줬는지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젠더 사건 전문 변호사를 하면서 한창 공격을 많이 받을 때가 있었거든요.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쪽에서 저를 공격한 적도 있었고요.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느낀 게 하나 있는데요. 여성들은 같은 여성의 편에 서는 게, 특히 공격받는 여성의 편에 서는 게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같이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러니 부당해 보이더라도 함께 목소리를 낼 사람들이 없다면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선택을 당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 막막하고 외롭다고 느끼는 여성들에게 이런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안 보인다고 해서 아무도 없는 게 아니고, 내 손으로 누구를 잡아주고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요. 지금 당장 누구의 손을 잡고 있지 않더라도 언제든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하고 싶고요.”

위로가 되는 말인 것 같아요.

“깜깜하고 고립되고 무섭다고 느낀 시기를 통해서 오히려 주위에 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사람들에게 내가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외롭지는 않아요. 나이가 들었으니 체력적으로 전보다 좀 힘들긴 하지만요. (웃음)” 

마지막 질문인데요. 우리 주위의 여성들이 ‘다시 쌓아가야 하는 것’,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1 더하기 1이 계속 1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2가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지치지 말고 계속 쌓아나가면 좋겠고요. 또 하나는 불안하다고 해서 안정만 추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한국 사회가 그렇잖아요. 특히 20~30대 여성들이 그 시기에 안정된 직장, 안정된 지위, 안정된 가정 같은 걸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사회적으로 그런 걸 계속 주입받아서 그런 거죠.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떤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거예요. 

근데 애초에 어디에 서 있어도 완전한 안정이라는 건 없어요. 거꾸로 어디에 서 있더라도 완전히 위험하지도 않고요. 가부장 사회가 말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을 꼭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죠.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덜 외롭고, 더 안전해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남성에 대해 ‘너무 똑 부러진다’고 말하지 않잖아요. 근데 여성에 대해서는 ‘걔 좀 너무 똑 부러진다’고 얘기한단 말이에요. 

여성들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하는 게 나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일 수 있어요.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들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회#인권#여성#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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