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인터뷰

이상민 님은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을 기획하고, 운영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용산에서 활동해요.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다양한 사람들의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록 활동이 중심인데요. 특히 정치·행정적 전문성이 필요한 이야기보다는 일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유가족분들의 이야기는 다른 지면에 많으니) 이태원 공간과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참사로 인해 이태원이라는 공간 자체, 또 공동체도 위기를 겪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단순한 상권 회복을 넘어서 이태원이 어떻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같은 얘기를 지역 주민들과 하고 싶었어요.

*저는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명칭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핼러윈이라는 날짜, 이태원이라는 공간 모두 참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이에요. 대신 참사 앞에 이태원이 붙었을 때 이태원의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계속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시도가 필요하고요.

기록단에는 어떤 분들이 있었나요?

다양한 분들이 모였어요. 일곱 분이 모였는데 그중 다섯 분은 버스 정류장에 있는 포스터를 보고 찾아오셨거든요. 지역 주민부터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감독, 해방촌 미디어 스타트업 종사자 등 다양했어요. 덕분에 활동이 뻔해지지 않아 좋았어요. 기록단을 통해 다양한 인터뷰 대상자를 구할 수도 있었고요. 이태원에서 활동하는 드랙 아티스트 친구를 인터뷰 대상자로 섭외하기도 하고, 기록단 구성원이 직접 운영하는 해방촌 공간에서 상영회 같은 것도 하고. 스스로 기록단이면서 동시에 인터뷰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요. 어쨌거나 모두 참사로 상처를 입은 분들이었거든요. 참사 현장 근처에 살거나, 참사를 직접 목격한 분도 있었고요. 다들 그 상처를 승화하고 싶은 갈증이 있었던 거예요. 

구체적인 인터뷰 내용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총 아홉 분을 인터뷰했는데요. 그중 기억나는 분은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둔 부모였어요. 참사 당일 이태원에 있었고, 인파에 휩쓸릴 뻔했다가 가까스로 집에 오셨다고 해요. 남편분이 3대째 이태원에서 살고 계셔서, ‘트릭 올 트릿’ 같은 핼러윈 문화에 익숙하고 매년 핼러윈마다 이태원에 갔었대요. 가족의 연례행사인 거죠. 이분들 얘기를 듣고 젊은이들이 모여 술 마시는 게 이태원 핼러윈 문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또 느꼈어요.

또 한 분은 이태원 한복판에 살고 계신 주민이었어요. 이분은 참사 당일 다른 곳에 있다가 이태원으로 돌아오셨는데, 그때 차량이 통제돼서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참사 현장을 목격하셨대요. 들것에 사람이 실려 가는 것을 보다가 경찰에게 사정해서 겨우 집에 돌아오셨고요. ‘단순히 현장에 체류했던 사람이 무슨 피해자냐’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참사를 경험하고 상처받은 사람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언론사에 연재하신 기사에서 “죄책감과 답답함 너머”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일부러 그 단어를 고른 건 아니고,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졌어요. 다들 죄책감을 느낀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CPR을 할 줄 아는데 현장에서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옆에서 놀고 있었다” 같은 거죠. 기성세대로서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 분도 계셨어요. 또 참사에 대해 말할 곳이 없어서 답답함을 느낀다는 분도 많았어요. 그분들은 뭔가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본인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어서 인터뷰에 참여한 거죠.

이런 점이 우리 활동의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는 죄책감을 해소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죄책감이 죄책감으로만 남아 있으면 너무 고통스럽고, 결국 그 사건을 외면하게 돼요. 평범한 사람들이 죄책감을 넘어 공동체의 회복에 기여할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예요. 다양한 방식을 상상해야 하는데 지금은 기껏해야 분향소 지키는 정도? 그것만으로는 각자가 느끼는 죄책감과 답답함을 해소할 수 없어요.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활동 회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팀이 회의를 하고 있어요. ⓒ이상민

참사 이후, 핼러윈에 이태원에서 ‘노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놀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놀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추모를 위해서요. 우리 사회에서 추모는 너무 비일상적인 방식으로만 이뤄지잖아요. 그러면 피로해지기 쉽고, 외면하게 돼요. 더 일상적이고 즐거운 추모가 필요해요. 영화 ‘코코’에 나오는 멕시코 전통 행사인 ‘죽은 자의 날’처럼요. 죽은 자들과 함께 노는 행사잖아요. 여러 방식의 애도가 가능해야 더 많은 시민이 참사를 기억할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분도, 시선 때문에 망설이는 분도 분명히 계실 거라는 걸 알아요. 그런 마음도 당연히 이해해요. 

이태원이라는 공간에서 논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태원에서 논다는 것에는 되게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저는 참사 이후의 반응도 참사 자체만큼이나 참혹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놀러 가서 죽은 거 아니냐’며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얘기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놀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태원은 퀴어로서, 외국인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놀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요.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공간이고요. 꼭 성적인 의미가 아니어도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고,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괜찮은 곳인 거죠. 그래서 이태원에서 노는 건 유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움이기도 해요. 

참사와 추모, 애도에 대해 더 덧붙여주실 말씀이 있나요?

누가 애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당사자는 누구인가? 유가족이 아니면 자격이 없나? ‘유가족분들이 이렇게 슬퍼하는데 내가 뭐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각자의 슬픔이 있고, 그것 또한 충분히 애도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분향소에서 ‘힘내세요’ 같은 말밖에 못 하잖아요. 이게 유가족분들의 탓은 당연히 아니지만요. 많은 사람이 애도의 주체로 나란히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추모 방식에 대한 거예요. 우리 사회는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문화예술 행사를 취소하곤 하잖아요. 지금도 놀이공원에서는 핼러윈을 지우고 추수감사절 이벤트를 열고 있어요. 하지만 침묵한다고 추모가 되는 건 아니에요. 참사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어려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DJ분은 ‘이태원 스트롱’이라는 행사를 열었는데요.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추모했어요. 파티 수익을 기부하기도 했고요.

혹시 올해 핼러윈에 놀아도 되나 고민하는 뉴니커에게 해주실 말이 있나요?

이태원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못 와도 괜찮지만요. 어떤 방식으로든 참사를 기억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으면 좋겠어요. ‘어 너도?’ 같은 느낌으로요. 세월호 때는 노란 리본이 그런 역할을 했는데, 그런 게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핼러윈에 저는 이태원에서 놀 건데요. ‘코코’ 코스튬을 통해 추모의 마음을 드러내면 어떨지 해요. 또 ‘코코’의 메인 OST 이름이기도 한 ‘Remember me’ 도장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에게 이걸 찍어주고 싶어요. 기억하기 위해 놀러 온 사람들이 그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주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오해받기 쉬우니까요. 

핼러윈에, 이태원에서 노는 사람들이 ‘생각 없이 놀고 있다’고 쉽게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여 그냥 놀러 왔다 해도 괜히 그 골목을 한 번 더 지나갈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 것도 다 참사를 기억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사회#10·29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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