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여성의 날 인터뷰 1️⃣: '라이커스(LIKE-US)' 안형선 대표

“각자 본인들이 하던 일을 쭉 하면서 계속 살아남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안형선 대표님은

여성 집수리 브랜드 ‘라이커스(LIKE-US)’를 운영하는 CEO예요. 여성들이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집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여성을 위한 마음 편한 집수리 서비스, 라이커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여성 집수리 브랜드 ‘라이커스’를 운영하는 안형선이라고 합니다.”

라이커스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여성 수리 기사들이 모여 있는 집수리 서비스예요. 제가 19살 때부터 자취를 했거든요. 여성 1인 가구로 지낸 지 15년 정도 됐는데, 자취를 하다 보면 집을 수리해야 할 일이 반드시 생깁니다. 집에 오시는 기술자분들이 100이면 100 남성분들인데,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남성분들이 온다는 것 자체가 사실 되게 불편한 요소예요. 

첫 번째는 신변의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서비스 품질 측면에서) 복불복’이라는 문제가 있죠. 어떤 분은 오셔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시고 수리도 말끔히 해주시지만 어떤 분은 응대가 투박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어요. 금액도 ‘가 봐야 안다’는 식으로 말씀하실 때가 많아 예산 계획을 미리 세우기가 힘들고요. 그래서 안전하고 체계적인 서비스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라이커스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라이커스라는 브랜드는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라이커스(LIKE-US)는 ‘우리와 같은’이라는 뜻인데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두 가지 중의적 의미인데요. 하나는 우리처럼 여성 기술자로서 활동하고 싶지만 활동할 기회가 없던 분들을 저희가 채용하는 거니까, 그런 부분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고요. 다른 하나는 소비자로서 우리와 같은 니즈가 있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라이커스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처음 슬로건은 ‘여성 주택 수리 서비스’였는데, 이후에 ‘마음 편한 집수리 서비스’로 바꿨어요. 집수리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정보의 격차가 있잖아요. ‘혹시 잘못 시공되면 어떡하지?’, ‘덤터기 씌우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이 항상 있는데, 그런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서비스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성 집수리 기사들만 모여 있는 서비스’라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새로운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얻으셨나요?

“‘왜 이 시장에 여성 기술자가 없지?’라는 질문이 저에게 오랫동안 있었어요. 전문가분들이 수리하실 때 옆에서 보면 ‘여자들도 배우면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 싶은 것들도 많았고요. 

그러다 이 서비스를 창업하던 시점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거 침입 미수 사건이 발생했어요. 다른 사람이 집에 방문한다는 것에 여성들이 엄청 예민해진 거죠. 그래서 여성 기술자들을 모아서 팀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여성 기술자들이 일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줄 수도 있고, 이용자 입장에서도 더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주위 반응도 굉장히 좋았고, 창업 지원 사업을 통해 처음 베타 테스터를 모집했을 때 100명 넘게 신청자가 몰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확신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죠.”

흔히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분야에 뛰어드신 이유가 궁금해요.

“너무 재미있는 질문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선머슴 같다는 얘기를 듣고 살았는데, 사실 그걸 칭찬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남성들이 하는 일이었어요. 근데 저한테 선머슴 같다는 건 제가 그걸 실제로 잘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 보니까 굉장히 비관적인 미래가 제 앞에 놓여 있더라고요. 취업 면접에서 여자여서 받아야 하는 면접 질문들도 있었고요. 굉장한 차별이라고 느꼈어요. 집 수리기사나 항공기 기술자처럼 흔히 말하는 남초 직업군을 보면서 ‘저 일은 정말 여자가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틈틈이 했고요. 제가 스스로 ‘난 페미니스트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됐을 때, 직업적으로도 그런 틀을 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더 확장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최종적으로는 ‘오늘의집’ 같은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오늘의집’을 보면 다양한 인테리어 용품들이 거기 모여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주거와 관련된 서비스들을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처음 오픈했을 때 “이사 서비스는 안 하세요?’ 하는 문의도 많았거든요. 집수리부터 이사까지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파트너를 찾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최근 생긴 관심사나 새로 생긴 취미 같은 게 있다면?

“2년 전에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모든 운동을 중단했어요. 다치기 전까지는 제가 풋살이나 농구 같은 팀 스포츠 하는 걸 좋아해서 많이 했고, 수영, 헬스, PT도 했는데요. 지금은 거의 못 하니까 몸도 무겁고 개인적인 취미도 없고 해서, 운동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게 개인적 목표입니다.”

주위 여성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삶은 어떤가요?

“그냥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가 창업하던 시기에는 ‘여성’이 스타트업 시장의 키워드 중 하나였어요. 투자도 활발했고, 여성 동료 창업가들도 많이 있었죠. 저희처럼 여성 고객에 초점을 맞춘 비즈니스도 많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더라고요. 제가 아는 소수의 여성 동료 창업가들은 비즈니스를 접은 경우가 많아요. ‘여성’을 키워드로 하는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다른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처음 나온 지도 벌써 8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대표님은 어떤 키워드나 기억이 먼저 떠오르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페미니즘 리부트’하면 일단 ‘강남역 살인 사건’, 그리고 저희가 이 사업을 시작하던 시점에 있었던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두 가지가 떠올라요. 개인적으로도 페미니스트로서 처음 각성했던 계기였거든요. 저한테는 사실 그 시점이 페미니즘 리부트가 아닌 그냥 부트였던 거죠.”

신림동 사건이 대표님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나요?

“‘그게 나였을 수도 있다’가 정확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대학생 때 실제로 친한 친구가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요. 모르는 사람이 집에 따라 들어오려고 하는 그런. 전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어요.”

대표님에게도, 라이커스라는 브랜드에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네요.

“맞아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해야 하는 사람이나 서비스로부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건데, 그게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불안감이 생기잖아요. 저희가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 참 신기했어요. 처음 베타 테스터를 모집하고 후기를 받을 때, 또 실제로 현장에 가서도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살아남아 주세요’ 였어요. ‘이 서비스 망하지 말고 살아남아 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거예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인지하시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연대감을 많이 느끼기도 했죠.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비스를 계속 유지해 온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몇 년 사이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완전히 동의해요. 저희가 하는 비즈니스 중에 ‘고쳐볼LAB’이라는 집수리 기술 교육 워크숍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2~3년 전만 해도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요청이 되게 많았어요. 저희 매출에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했고요. 근데 그게 지금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또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얘기가 많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정부 정책에 따라 편성된 여성 창업가 지원 사업 같은 게 많았거든요. 네트워킹도 하고 여성 창업가들끼리 자주 모일 기회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게 사라졌어요. 정책적으로도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사라져가는 것을 너무나도 느낍니다.”

창업가로서 아쉬움이 크실 것 같아요.

“너무 크죠. 내가 꼭 그 서비스의 유저가 아니어도, 혹은 그 기업의 대표와 친분이 없더라도 연대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보이지 않는 연대 자체가 없어지는 거니까 굉장히 아쉬움과 허전함이 크죠.”

그런 아쉬움을 달래는 대표님만의 방식이 있으실까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그래도 우리가 잘 살아남아서 여성 기술자를 계속 모집할 수 있으면 그게 하나의 방법이 되겠죠. 우리는 계속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라도 살아남아서 계속 잘 되고 이 시장에서 주목받는 리딩 컴퍼니가 되면 사람들이 확실히 다르게 생각할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무기력함이나 허무함을 느끼는 여성들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많은 것들을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모두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그냥 각자 본인들이 하던 일을 쭉 하면서 계속 살아남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또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가 터져 나오는 리-리부트의 시기가 오겠죠. 그때 잘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할 수 있으려면 그전까지 일상이 유지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하던 일을 꾸준히 잘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대표님의 단단한 마음가짐이 느껴지네요.

“그렇게 마음먹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사실은 되게 무기력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더 다른 여성들과 연결되려고 노력해요. 라이커스도 3월 9일 여성의날 기념 워크숍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사실 집수리는 여성들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기는 좀 어려운 분야잖아요. 가족 구성원 중 남성 구성원에게 기회가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많고요. 여성들이 접하기 어려운 것 중 또 다른 하나가 차량 정비라고 생각하는데요. 여성들을 대상으로 경정비 워크숍을 제공하는 ‘언니차’라는 브랜드가 있어요. 그 대표님과 함께 워크숍을 하기로 했어요.”

너무 흥미로운 기획인데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행사는 3월 9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스페이스 살림’에서 진행되고요. 소정의 참가비가 있긴 한데, 행사 수익금 전액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기부할 계획이에요. 여성들이 모금해서 여성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것 자체가 연대니까요. 

행사명은 ‘여,자가수리’로 정했는데요. 자동차의 ‘자(自)’와 ‘집 가(家)’자를 썼고, 합치면 ‘자가(自家)’라는 의미도 있어요. 집수리와 차 정비에 관심 있는 여성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행사를 통해 연대감을 느끼고, 이후에도 워크숍 등을 통해 관심을 이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우리 주위의 여성들이 ‘다시 쌓아가야 하는 것’,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금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여성이라는 정체성,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있다는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고 있고, 사회도 우리를 여성으로 받아들이잖아요. 거기서 차별도 발생하고요. 그런 감각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이게 여성이라서 생긴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그걸 기점으로 뭔가를 세워나갈 수 있으니까요.”

둔감해지지 말자는 말씀인 것 같아요. 

“그렇죠. 차별에 익숙해지거나, 부당한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내 주위에 손잡아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도, 나 스스로 계속 버티고 있다 보면 또 손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겠죠.” 

그런 목표를 위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개인의 삶이 건강해야 그가 속해 있는 조직과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위밋업 스포츠’라는 곳이 있거든요. 은퇴한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주로 여성들에게 레슨을 해주는 곳이에요. 

저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과 스포츠를 해보는 게 되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거기 가면 나랑 비슷한 것에 관심 있는 여성들이 모여 있고, 강사나 코치분들이 다 여성이니까 엄청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거든요. 다들 그런 기운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사회#인권#여성#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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