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국제 여성폭력 추방의 날과 강제추행죄 개정

1983년의 어느 날, 강제추행 피해자로 법정에 선 여성에게 “강제추행 아닙니다” 판결이 내려졌어요. 이유는 ‘충분히 저항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 그로부터 40여 년 뒤, 재판장에 선 또 다른 강제추행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국제 여성폭력 추방의 날(11월 25일)을 맞아 뉴닉이 준비한 이야기, 함께 따라가봐요.

이게 무슨 얘기야?

지난 9월 나온 강제추행죄 관련 대법원 판결 하나가 화제가 됐어요 ⚖️. 강제추행죄에 대한 지금까지의 판례를 완전히 뒤집은 것. 이게 무슨 얘기냐면:

  •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울 정도로(=항거불능) 심각한 폭행·협박을 당했다는 증거가 있어야만 강제추행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피해자가 필사적으로 저항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가해자에게 무죄가 선고되곤 했던 것. 

  • 앞으로는: 대법원은 피해자가 공포심을 가질 정도의 협박만으로도 강제추행이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다고 했어요. 기존 판례를 폐기한 것. 강제추행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 거라,  40여년 만에 나온 큰 변화라는 말이 나오고요.

40년 만이라고?

사실 여태까지 우리나라 법에서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지적은 계속 있었어요:

  • 1953년, 정조에 관한 죄: 우리나라 헌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 강간죄·강제추행죄는 ‘정조에 관한 죄’로 만들어졌어요. ‘피해자가 정조를 지키기 위해 마땅히 강하게 저항해야 한다’는 걸 전제하고 처벌 여부를 결정한 것. 이에 따라 법원이 봤을 때 ‘순결하지 않은' 여성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생겼고요.

  • 1983년, 항거불능 요건: 강제추행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피해자가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기준이 굳어졌어요. 일반 폭행·협박죄의 경우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폭행·협박만으로도 죄가 인정되는데, 강제추행죄에는 훨씬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 것. 마치 일반 폭행 피해자에게 “그러게 강하게 저항했어야지!” 하면서 피해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이번에 대법원이 이 항거불능 요건을 폐기한 거예요. 피해자에게 정조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 생각을 담고 있어 타당하지 않다고 보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요시하는 지금 법과도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성적 자기결정권이 뭐였더라?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성적인 결정을 내릴 권리를 말해요. 성폭력 판결에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계속 있었는데요. 피해자가 최선을 다해 저항했는지 아닌지를 따질 게 아니라,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했는지 아닌지를 따져야 한다는 거예요 🧐. 이번 대법원 결정 역시 판단 기준의 초점을 피해자의 상태가 아니라, 가해자의 행위로 옮겼다는 의미가 있고요.

그렇게 보니까 의미 있네

맞아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도 나와요. 강제추행죄와 비슷한 법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 대표적로 강간죄가 있는데요. 강간죄는 폭행·협박을 통해 다른 사람을 강제로 간음하는 죄인데, 역시 피해자의 항거불능 여부가 판단 기준이 돼요. 이에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말도 있어요. 피해자가 이 관계에 확실하게 동의했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비동의 강간죄). 우리나라 정부도 올해 초 “동의 여부로 기준 바꿀게!” 발표했는데요. 이후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계획을 취소했다고.

비동의 강간죄는 찬반 논란이 뜨거운 주제인데요. 시대가 바뀌며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식도 조금씩 바뀐 것처럼, 더 많은 고민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와요. 보다 많은 이들이 피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사회#인권#여성#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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